숲길

지난 6월, 우리는 브란덴부르크 템플린(Templin, Brandenburg)행 기차에 자전거 두 대를 실어 여행을 떠났다. 템플린에 도착한 우리는 목적지인 보이첸부르크(Boitzenburg)까지 자전거로 이동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꽤 무모한 계획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야 브란덴부르크의 넓은 들판을 양쪽에 끼고 달리는 게 즐거웠지만 그것도 잠시, 두 세 시간만에 금방 체력이 고갈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쭉 가로등이 없는 국도라서 어둑해지기 전에는 마을에 들어가야 했다. 우리가 땀범벅이 되어 겨우 숙소에 도착한 건 장장 다섯 시간 만이었다. 자전거에 실었던 2l 페트병 물이 순식간에 증발해버릴 정도로 무척 더운 여름날이었다.

둘째 날부터 우리는 레스토랑이 달린 앙증맞은 숙소에서 아침과 점심을 해결하고 그 동네를 감싼 숲길을 걸었다. 동굴 같은 숲의 입구는 어느 방향이든 하나같이 정오의 태양과 대비되는 서늘한 그늘의 시작이었고, 그 길을 따라 걸으면 오래된 나무 표지판이 불쑥 튀어나와 작은 명소들을 안내하거나, 썩은 나뭇가지가 떨어질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를 했다. 김강과 나는 가방 하나씩 둘러메고 간간이 GPS로 위치를 확인하며 천천히 걸었다.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고 우리는 나무에서 떨어진 건지, 아니면 길을 건너는 중인지 모를 커다란 달팽이와 실뱀을 실컷 구경할 수 있었다.

숲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니 모기와의 전쟁이었다. 귓가에서 얄밉게 도발하는 모기를 어떻게든 쫓아보려고 겉옷을 공중에 휘두르며 나는 여행 바로 직전에 썼던 그림책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숲을 낭만적으로만 상상했을까? 날벌레에 짜증을 내다보니 헛웃음이 났다. 그림책은 친구가 제안한 작업으로 그녀가 그린 10장의 그림에 이야기를 붙이는 일이었다. 그림 속에는 어린 소녀가 숲을 걷고 있었다. 나는 다채로운 콜라주와 친구가 제안한 키워드에 매료되어 단숨에 이야기를 꾸며낼 수 있었다. 어두운 숲에서 마음을 추스리는 그 소녀가 가여웠다. 가여워 하느라 숲에 달팽이와 뱀과 모기가 산다는 것 쯤은 무시했다.

12월이 된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나에게 올해 가장 잘한 일에 속한다. 공허한 마음에 잠시 작은 불씨가 켜졌다고 느꼈을 정도로 따뜻했으니까. 그 그림책은 후에 어느 독일 그림책 공모전에서 top 50위권에 들어서 주최측 전시에 초대를 받았다. 문제는 코로나 때문에 전시가 무기한 연기되고 있다는 것이지만, 아무튼 그렇다는 말을 들었다.

우연히 17세기의 30년 전쟁 때 훼손된 수도원 유적지 (Klosterruine Boitzenburg)를 보았다. 그 주변 개울가에서 풀어진 작은 염소들이 사람을 발견하고는 불안한지 반가운지 한참을 울었다.

또 걷다보니 숲 한쪽에 한무더기 나무가 누워있었다. 그렇게 향기로운 단면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마치 와그작와그작하고 깨물어 먹는 당근처럼 싱그러웠다. 당근을 어금니에 실컷 동강내다가 침에 버무려 꼴깍 목구멍에 넘기듯 탐하고 싶은 향기였다.

이 여행에서 돌아온지 벌써 반년이나 흘렀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여름은 오래전에 가버렸고 겨울이 또 깊어지려고 한다. 요즘은 설계사무실에 나가 직업훈련을 받고 있는데 하루종일 눈이 시리게 화면만 들여보다가 이렇게 여행 사진을 찾아보고 또 글을 쓰다보니 숲과 호수가 어우러진 자연이 다시 그리워진다. 이번 크리스마스 휴가에 또 어딘가 걸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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