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우 리 (Frau Lee)

Untitled (27)

독일어를 배우느라 저질렀던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나열해 보라고 하면 나는 밤도 지새울 수 있을 것만 같다. 지금의 허접한 독일어 실력을 갈고닦는 데 나 역시 무수한 오해와 오독을 거쳐왔기 때문이다. 글자 자체의 의미에 집중하니 상황을 오버해서 받아들이거나 – 반대로 가볍게 이해하여 뒤늦게 수습한다고 난처했던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 수많은 시행착오 중에서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웃픈 에피소드를 하나 골라야 한다면 나는 ‘프라우 리 (Frau Lee) 사건’을 들 것이다. 그건 지금 다시 생각해도 머리끝이 쭈뼛하고 서니까.

프라우 리 (Frau Lee) 사건은 내가 독일에 처음 도착하고 나서 일주일 후에 일어났다. 당시의 나는 인간 불도저 같은 열정으로 무엇이든 도전하고 배우려고 약이 바짝 올라있었다. 그러니 더욱 실수해도 부끄러운 줄을 몰랐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수치심은 그보다도 까마득한 이후에 독일어가 익숙해지고 나서야 찾아왔다.

그날은 나의 베를린 첫 동거인이었던 파독 간호사 할머니께서 나를 이웃에게 소개해 준 날이었다. 아파트 외벽보수공사 문제로 세입자 회의가 있었고, 그 자리가 나에게는 처음으로 다수의 독일인에게 둘러싸인 경험이었다. 그래서 꽤 흥분했던 것 같다. 이웃들이 발언하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면서 경청했고 그러다 가끔 무언가 알아들은 양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아래층에 사는 한 아주머니가 상냥하게 나와 눈을 맞추며 인사했을 때, 바로 그 흑역사가 시작되었다. 나의 동거인인 파독 간호사 할머니는 나를 본인의 먼 친척이라 소개하셨고, 그다음 순간에 나는 나를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싶었다.

여기서 잠깐. 당시 나의 독일어는 고작 A 레벨이었다. 외국인을 위한 독일어(Deutsch für Fremdsprache)를 모르는 분들은 A 레벨은 초보 중의 생초보라는 걸. 그리고 그들에게는 이름 석 자 말하기도 가슴 떨리는 일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나는 그 커다란 눈을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터지는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태연한 척 미소지으며 “할로, 이히 하이쎄 프라우 리(Hallo, ich heiße Frau Lee).”라고 또박또박 말하려 애썼고, 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할머니가 당황하시면서 상황을 정리했던 것 같다. 막상 나는 독일인과 현지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기쁨으로 이상함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뭐라고 말했었더라? 생각해본 건, 할머니의 핀잔을 받고 나서였다.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와 황당한 눈으로 하지만 긴 말은 안 하시고, 독일에서는 아무도 자신을 프라우 리 (Frau Lee) 라고 소개하지 않는다고, 독일어를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조언하셨다. 위의 저 말을 직역하자면, ‘안녕하세요. 저는 이씨 부인이라고 합니다.’이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당시의 나는 냉랭한 할머니의 태도가 그저 미웠다. ‘아니, 외국어 배우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지 뭐. 그리고 진짜 내 친척도 아니면서…’하고 말이다. 왜곡된 기억에 의하면 3개월간의 짧은 기간 동안 나는 조금 싸가지가 부족한 동거인이었던 것 같다. 그러지 말 걸 그랬다. 7년이나 흘러버린 지금은 사실 할머니의 성함도, 목소리도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던 강인한 눈빛만은 잊히지 않는다. 지금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시기를.

갑자기 시시껄렁한 유학 초기의 에피소드가 떠오른 건 요즘 재독한국여성모임에서 지은 책 <독일이주여성의 삶, 그 현대사의 기록>을 읽고 있기 때문이었다. 1965년부터 외국인노동자 고용 중단정책이 있었던 1976년까지 약 만천 명의 한국인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독일에 이주해왔다. 당시 한국에는 간호 인력 실업 문제가 있었고, 독일에는 의료계 종사자 인력난이 심각했기에 한국 정부에서 해외인력 수출의 목적으로 한국의 간호 인력을 서독에 파견한 것이다. 그들을 파독 간호사라고 하고, 베를린에도 여러분이 계신 걸로 알고 있다. 지금이야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독일어 사전을 이용하거나 심심하면 한국에 있는 친지들과 연락을 할 수 있지만, 무려 60~70년대에 제대로 된 어학교육 없이 오로지 반공교육을 받고 바로 일터에 뛰어들어야 했다는 증언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세계는 아직도 민족국가 단위의 체제 아래서 국제자본주의의 논리가 전개된다. 여기서 이주노동력은 상품으로 전화되는데, 노동력은 인력이니 노동법에 적용된다. 이러한 현실을 이주민들은 자기 몸으로 직접 더 뚜렷하게 체험한다.”

재독한국여성모임, <독일이주여성의 삶, 그 현대사의 기록> ,2014년 도서출판 당대

1973년에는 제정된 ‘외국인노동자 고용중단’ 법규에 따라 많은 이주노동자가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 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때 파독 간호사분들도 귀환할 위기에 처했는데 이에 대항하여 ‘우리는 인간이지 상품이 아니다’라는 슬로건으로 서명운동을 일으켰고 치열한 투쟁 끝에 독일에서 살아갈 권리를 지켜냈다.

“이 서명운동에 참여하면서 나는 나와 공통된 경험과 문제를 안고 있는 많은 한국여성들을 만났다. 우리에 대한 부당한 처사를 우리가 적극적으로 문제화시키고 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며 얻은 공동체험은 나를 정치대상의 위치에서 정치활동의 주체로 인식하게 하였고 그것은 다름 아닌 나 스스로를 정치화하고 해방시키는 의식화 과정이었다.”

조-루베 국남, ‘내 정체성의 또 다른 이름, 이주여성’ 중에서

재독한국여성모임, <독일이주여성의 삶, 그 현대사의 기록> , 2014년 도서출판 당대

조-루베 국남 선생님의 글은 개인적으로 놀라웠다. 이주민 여성 노동자로서 이토록 명확하게 사회학적 자기 인식의 경지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내적 혼란과 성숙이 교차했을까. 어떤 이야기는 특히 마음이 먹먹해졌는데, 예를 들어 선생님이 1974년 베를린의 한 학교에서 여성해방론을 주제로 한 토론을 회상하는 밑의 문단은 2020년 내가 베를린의 대학에서 느끼는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독일인인 동급생들과 ‘제3세계 여성’에 관한 논제를 둘러싸고 토론을 하다 보면 종종 나 스스로의 사회적 위치가 의아스러워지곤 했다. 이론으로 잘 포장되는 토론내용에서 무엇인가가 현실과 어긋나는 듯한데 그게 왜 그런지는 명백히 지적할 수가 없었다.”

조-루베 국남, ‘내 정체성의 또 다른 이름, 이주여성’ 중에서

재독한국여성모임, <독일이주여성의 삶, 그 현대사의 기록> , 2014년 도서출판 당대

이 책의 한국의 어두운 현대사에서 조국을 위해 외화벌이에 청춘을 바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 가장 좋았다. 지금 2020년에도 워너비인, 독립적이고 지적인 직업여성의 삶이며 이주민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찾는 끊임없는 탐구다. 지독하게 자기 삶을 사랑하는 여성의 이야기는 자꾸자꾸 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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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책을 주신 유정숙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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