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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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한쪽에 아기 고양이용 우유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거 깻잎이가 먹던 건데 어떡하지? 하고 몇 번이나 우리 손에 들렸다가, 다시 냉장고로 들어가기를 반복하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우유 팩. 그걸 마시던 깻잎이가 떠나고 두 달이 지났다. 깻잎이가 숨쉬기를 멈추고 나서도 우리는 한동안 깻잎이의 빈 껍데기에 대고 이름을 불렀는데 근육이 굳어도 털은 윤기가 반지르르하게 흘러서 자꾸자꾸 손이 갔기 때문이었다. 평소엔 유연하게 뻗어서 몸의 균형을 맞추던 꼬리는 스르륵 아무런 저항 없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고 그건 마치 동물의 꼬리 모양을 흉내 낸 열쇠고리 장식 같아서 신기했다. 한참을 그렇게 우리는 깻잎이가 사라진 깻잎이를 관찰하다가 노이쾰른에 있는 반려동물 전용 화장터로 보내주었다. 막상 배웅을 하고나니 껍데기를 보내주는 것은 생각보다 슬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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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우유가 썩었을까 두려워 유통기한을 살펴보니 2021년까지는 괜찮다고 쓰여있었다. 안 그래도 코딱지만 한 냉장고라 정말 일 년을 저대로 둬도 되는지 모르겠다. 곰팡이가 피기 전에는 처분해야 하지 않나 싶지만, 아마 나는 앞으로도 냉장고를 열 때마다 모른척할 테고 김강은 마음이 여려 끝까지 버리지 못할 것이다.

몇 모금 하지도 않는 거 무스코사가 다 마셔주면 좋을 텐데. 하지만 그녀는 아직 현역 고양이라 아기 고양이가 마시는 우유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건 깻잎이도 그랬는데, 사료를 씹기 어려워지자 마지막 이틀 정도 마시고 싶어 했다. 어쩌면 무스코사도 나중에는 마시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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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혼자가 된 무스코사가 우리의 걱정거리였다. 이 순진해 보이는 고양이에게도 그건 큰 이별이었으니까. 그날 무스코사도 깻잎이가 떠나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깻잎이와 함께 바닥에 바짝 엎드려 흐느끼는 동안 무스코사는 침대 위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었는데, 뒤통수만 보이는 채로 그릉-그르릉하고 우렁차게 모터를 돌렸다. 그렇게 큰 모터 소리는 처음이라 놀라서 우리는 침대 위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고, 고양이는 인간처럼 슬프다고 눈물을 흘리진 않는다는 걸, 그리고 기분 좋을 때만 모터를 돌리는 게 아니라는 걸 배웠다. 무스코사는 마치 깻잎이가 마지막으로 내뱉는 숨까지 온몸으로 예민하게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Untitled (10)

 

무스코사는 한동안 두 인간에게서 쏟아지는 과한 애정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요즘은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아유 귀여워라, 소리를 듣고 있다.

 

Untitled (9)

 

마지막까지 둘은 사이가 좋았다. 문득 나는 깻잎이의 어릴적 사진이 보고 싶어졌다. 2000년대의 깻잎이와 무스코사는 장난스러운 눈을 하고 있었다. 나는 모르는 귀여운 추억들이 사진과 함께 튀어나오는 모양인지 김강이 옆에서 쉬지 않고 이 고양이들이 어떤 사고를 쳤었는지 이야기해주었다. 나도 5년을 부대껴 살며 이 둘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순전히 나의 착각이었다. 그 발랄한 사진들을 보는 내내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금세 지난 5년간 너무나 당연했던 우리 집 창가의 풍경이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우리는 듣지 못했지만 둘이서 매일매일 창가에 누워 지나가는 새를, 자전거 탄 인간을 구경하며 무언가를 속삭였을 거라 생각하면 어쩐지 눈물이 났다.

 

Untitled (2) 사본

 

요즘 들어서 무스코사가 우리에게 말을 거는 일이 많아졌다. 새침한 얼굴을 한 수다쟁이가 되어버렸다. 이만큼이나 깻잎이와 대화를 많이 나누었었나 싶어서 어설픈 대답을 해주지만 솔직히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1 thought on “그녀의 근황”

  1.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둘의 관계, 둘이 나누었던 감각, 눈빛, 호르몬, touch 는 어는 정도 였을까요? 깻잎이와 무스코사는 정말 어떤 시간들을 보내고 이별을 한 것일까요? 주은님 글 읽으면서 그런 생각들을 해보았어요. 잘 지내고 있길- 우리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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