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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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증가하는 독일 내 전염병 감염자 수와 그에 대응하려는 독일 정부의 규율이 라디오 주파수를 통해 우리 집 주방까지 처들어와서는 눈치 없이 떠들던 4월이었다. 앞으로 이 시기를 그렇게 기억할 것 같다. 어느 대도시에서 하룻밤 새 수천이 죽었고, 감염되지 않으려면 마스크를 해야 하니 마니, 불길한 말을 주고받는 게 이성적인 사람들이 하는 일이었다. 그런 뉴스를 듣고 있으면 죽음과 질병이 가까이 있다고 위협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봄날이 좋은데 꽃놀이를 못 하는 게 아쉬워 입맛을 다시기도 했다. 창밖에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집 안에 갇힌 나를 위로해준다고 제멋대로 해석하고, 북독일에 가뭄이 길어서 비가 와야 한다는 뉴스는 대충 흘려들었다. 그러는 동안 나의 사랑하는 고양이 깻잎이가 조금씩 시들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 향긋한 흙 내음이 맡아지는 이른 아침. 가뭄을 뚫고 봄비가 내리려고 하늘이 우물쭈물 심상치가 않았다. 비가 안 오면 좋을 텐데. 김강과 나는 지난 밤 잠자리가 편하지 않았다. 깻잎이를 병원에 데려가자고 서로에게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10시가 되어야 동물병원이 문을 여는데 깻잎이는 7시부터 급격하게 달라졌다. 그 위태로운 모습에 겁을 잔뜩 먹고 눈물을 쏟다가도, 죽음을 향해 용감하게 돌진하는 깻잎이를 곁에서 열심히 응원했다. 잘 할 수 있어. 잘하고 있어, 깻잎아! 차가운 방바닥에 함께 누워 작은 고양이가 제 늙은 몸뚱이에서 어서 뛰쳐나가기를, 훨훨 달아나기를 기도했다. 그러다 9시 10분이 되자 깻잎이의 숨이 거칠고 드물어졌다. 앙상해진 등을 쓰다듬으며 깻잎이가 흘린 침과 고통스레 앞으로 뻗은 발을 바라보다가 머리맡에 있는 김강의 거대한 책장으로 눈길이 머물었다. 한국에서 신학을 전공했던 김강의 책장에서 하느님이니 종교니, 천국이니 지옥이니, 벌이니 죄니 하는 두꺼운 책들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다시 깻잎이를 바라봤다. 깻잎이는 평소처럼 무척 사랑스럽게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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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생 깻잎이. 나의 영혼을 어루만진 조그마한 고양이.

2 thoughts on “존재의 아름다움”

  1. 죽음은 삶의 그저 다른 하나의 방식이라고, 모든 생명이 있는 것은 죽음이 당연히 이어져 있다고, 태어난 순간부터 생명체는 죽음을 고향으로 삼아 살아가는 거라고..하는 말을 눈에 못이 박도록 읽고 또 읽지만..이 하찮은 몸과 마음은 나의 존재에 들러붙어 내 삶을 휘두르기 마련이네요..깻잎이의 고향길 이야기에 눈물이.. 부럽네요, 깻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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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깻잎이가 고향에 돌아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지네요. 언제 어떤 형태로 겪어도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이 이별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함께 명복을 빌어주시고 그 작은 존재를 알아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기운을 차리게 되어요. 참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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